본문 시작
세저리 이야기
애정결핍이 한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 이동현
- 조회 : 5428
- 등록일 : 2008-07-05
영화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의 주인공 이름은 ‘동현’이다. (참 동현이 많기도 하다)
아무튼 이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단순했다.
“동현아, 제발 미치지는 마라” 2006년이었다.
남들보다 더 진지하고, 덜 재밌는 대학생활이 끝나갈 때쯤 나는 세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의 손을 잡아주세요.”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귀하와 같은 인재를 모시지 못한…….” 언제 내가 나를 인재라고 했나……. 젠장,……. 그렇게 석 잔의 소주를 마시는 동안, 나의 PD 꿈은 악몽으로 변해갔다.
“딱 봐도 너는 기자가 어울려.” 어제까지 날 보며 타고난 PD스타일이라고 말하던 사람들이었다. 2007년 새해가 밝자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맞췄다.
‘사회부 기동취재팀’ 그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말했다. “내가 창의력이 좀 부족하잖아. 대신 순발력은 좀 있어. 그래 사실 적성에 안 맞았던 거야” 난 결심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어제까지 책상위에 놓여있던 책 ‘PD의 꿈, 나비의 꿈’은 책상 아래로 내려갔다. 대신 그 자린 ‘TV뉴스 취재에서 보도까지’, ‘언론문장 연습’, ‘기자 그 매력적인 이름을 갖다’가 차지했다. 시험 칠 수 있는 곳이 10군데도 넘는다.
이건 분명 긍정적인 징조였다. ‘엑서더스’, 그 옛날 모세가 람세스의 박해를 피해 홍해를 갈라 시나이 산으로 간 것처럼, 나도 자유와 축복의 대지로 나아갈 테다! 그러나 웬걸. 아직 나에겐 홍해를 가를 힘이 없었고, 대신 갈라 줄 신도 없었다.
그리고 나를 박해하는 람세스도 보이지 않았다. ‘귀하와 같은 인재를 모시지 못한…….’ 아나, 내가 몇 번이나 말해야 하냐고……. 나는 그냥 지원자라고……. 그래도 이 방식은 그나마 나았다. ‘합격자는 개별 연락할 테니 집에 돌아가서 기다리세요.’ 이건 뭐지? 지금 나랑 연애하자는 수작인가? “대답 없는 핸드폰은 너무 커……. 무거워……. 혹시라도 놓칠까봐 씻을 때도 들고 갔다…….
화를 내며 꺼버렸다.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켜 보아도……. 텅……. 비었다.” - 오은수,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10군데도 넘게 시험을 볼 수 있다는 건 긍정적이기만 한 게 아니었다.
2006년엔 소주 석 잔만 마시면 됐었는데, 2007년엔 적어도 10잔 이상은 마실 정당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한 번, 두 번……. 열 번. 그렇게 내 몸은 ‘그라목손’을 마신 사람처럼 근육에 힘을 잃었고, 결국엔 펜을 들 수도 잃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전화기 액정만을 바라봤다. 헤어진 여자 친구가 전화 걸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상상에 빠진, 고2 겨울방학을 넘기지 못한 아이처럼. 세상이라는 부모와 ‘안정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면역력이 떨어진 아이처럼. 그렇게 난 꿈은 잊은 채 불안에 잠식됐었다. 오늘 오전, 홀로 문화관에 있으니 예의 그 조바심이 불러오는 불안이 오랜 친구처럼 "살갑게" 어깨를 걸쳐왔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이런다. 애정 결핍에 빠진 ‘서티 이어스 올드’ 보이……. 힘을 내서 동현이가 동현이게 말해본다. “꿈에 미치되(至), 꿈 때문에 미치지(狂)는 말자.” 작가 박완서 선생은 “요즘 사람 나이를 옛날 사람과 똑같이 쳐서는 안 된다. 살아온 햇수에 0.7을 곱하는 게 제 나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80세는 56세, 70세는 49세, 60세는 42세, 50세는 35세, 40세는 28세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박완서 선생의 말대로 하면 지금 내 나이는 21살이다. 백화점 세일 소식보다 더 기쁜 나이 세일. 그렇다면 내겐 아직 펴보지 못한 인생의 장들이 무척이나 많이 남아있다. 실패를 두려워할 게 아니라, 생의 빈 페이지에 적을 말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해야 할 때인 것이다. 혹시 누가 아는가? 물때를 잘 맞추면, 참 많기도 한 여러 "동현"이가 홍해를 가를지도...^^ 뱀발) 소방서에서 불만 끄는 건 아니다.